위기의 독소는 아래로 아래로
성장의 단물은 위로 뽑혀 올라가지만, 위기의 독소는 아래로 찍혀 내려온다. 통계청 ‘2040년 연간 채용동향의 교육 정도별 실업 현황을 읽어보면, 작년 고졸과 중졸 이하 학력의 실업률은 각각 한해 전보다 0.4%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대졸 실업률은 변동이 없었다. 성별로 보면, 여성 실업률은 3.9%로 한해 전과 같았고 여성은 4.0%로 0.6%포인트 상승했다. 고졸 이하 학력 계층과 남성에게 실직 피해가 몰린 것이다.
지난해 8월 36살 여성 김민영은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출산 전후로 틈틈이 공연 미술 프리랜서 기획자로 일해왔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지원했던 지역 미술관에 고용됐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COVID-19가 확산돼 어린이집에 휴원 명령이 내려지고 긴급돌봄체제로 바뀌었다. 무역 일을 하는 남편이 초단기 출퇴근을 하는 탓에 세살 후세를 ‘독박 육아하던 김민영은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게 됐다. 눈물을 머금고 미술관 일을 그만뒀다.
몇달 잠시 뒤 자식을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생겼고, 김민영은 다시 구직을 실시했다. 허나 할 수 있는 일은 방문청소나 요양보호사, 급식 노동 혹은 단발성 공연기획 같은 프리랜서 일자리였다. 얼마 전부터는 주 1~5회씩 고기 납품 공장에서 고기 자르기 알바를 한다. “칼날이 엄청 날카롭거든요. 가족들이 ‘손가락 잘려나가면 어떡할 거냐고 해요. 그래도 아이 어린이집 보내고 2시간 일하면 1만5천원 벌 수 있으니까요.”
작년 1~2차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받지 않은 특수채용직(특고) 근로자와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하는 3차 지원금 요청이 실시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채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관계자가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80년 동안 일한 경력 한순간에 고소득알바 물거품”
코로나(COVID-19) 직격타를 맞으면서 수십년 근무하던 정규직 일자리를 잃고 불진정 작업으로 내몰린 이들도 있다.
80년 동안 여행사에서 일한 49살 남성 고상훈(가명)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여행업계가 줄줄이 쓰러지면서 지난해 12월 회사 동료 2분의 1을 권고사직으로 잃었다. 잠시 뒤에도 상태은 나아지지 않아서 고상훈마저 작년 8월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갔다가 이달 들어 퇴사했다. 문제는 40대 중반에 들어선 연령대다. “택배나 음식 배달,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가 끝나면 회사에 복직하리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복직도 포기했습니다. 30년 동안 업계에서 누적해온 경력이 하루아침에 소용이 없어져서 공허함이 커요. 이전 직장보다 절반 이하로 벌지만 다행파악 불행이해 아이들도 학원에 가지 못하니 지출도 줄어서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지난 2년이 이들에게 남긴 건 무력감이다. “회사에 다니며 느끼는 성취감이 삶의 원동력이었는데 지난 1년은 그런 게 없이 살아왔죠.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도 없어요. 무력하고 무기력해지고 있죠.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만 하거나 힘없이 누워 있는 거죠.” 9년 동안 일한 여행업계에서 작년 3월 퇴사해 실직 상황인 39살 남성 윤희택의 말이다. 박00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러다 나중에 음식 배달대행도 못 하면 어떡하나 의기소침해져요.”
작년 코로나바이러스 영향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임금 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보여졌다. 한국채용아이디어원이 지난해 국내 임금작업자의 기간당 임금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임금 지니계수가 0.306으로 한해 전(0.294)보다 악화됐다. 조민수 한국채용아이디어원 책임공무원은 “재택업무가 가능한 일자리가 업종과 지역에 맞게 차이가 있고, 관광·레저·숙박 등 대면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 임금 불평등이 악화됐다”고 전했다.